축구 일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축구로 시작된 진짜 전쟁

축구알리미 2024. 7. 18. 15:30

안녕하세요 축구알리미 입니다.

오늘은 축구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최근에 펼쳐쳤던 2024 코파아메리카를 보셨는지요?

저는 대회를 보면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축구는 단순히 축구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치열한 경기와 더불어 관중들의 과격한 반응을 직접 보신다면 이게 어떤 말인지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축구 때문에 진짜 전쟁을 벌였던 나라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축구가 불을 지펴 일어난 실제 전쟁,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이야기입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전쟁'은 역사적으로 매우 독특한 사건으로써

1969년에 일어난 이 전쟁은 축구라는 스포츠가 갖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재조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나라가 단순히 축구경기 결과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축구가 전쟁의 불씨로 작용했다는 점 하나라도 충분히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축구전쟁의 배경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전쟁1969년 6월과 7월 사이에 발생했습니다.

두 나라 간의 갈등은 주로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갈등에서 비롯되었는데요,

당시 엘살바도르는 국토면적은 작지만 인구 밀도가 높아 농업용 토지와 일자리 부족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엘살바도르인들이 온두라스로 이주하여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 했습니다.

 

반면, 온두라스상대적으로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지만 경제 발전이 더뎌 많은 자국민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이 온두라스에 정착하면서 현지 주민들과의 경쟁이 심화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특히 농업 부문에서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이 온두라스 주민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충돌이 빈번해졌습니다.

 

1960년대 후반, 온두라스 정부는 자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습니다.

결국 1969년에 온두라스 정부는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이 강제로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으며,

이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축구전쟁의 전개

이러한 갈등 상황속에서 두 국가 간에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전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첫 경기는 1969년 6월 8일 온두라스에서 열렸고, 온두라스가 1-0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양국 팬들 간의 충돌이 발생하며 불안이 증폭되었습니다.

 

두 번째 경기는 6월 15일 엘살바도르에서 열렸고, 엘살바도르가 3-0으로 승리했습니다.

이 경기에서도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양국 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세 번째 경기는 중립지인 멕시코시티에서 6월 27일에 열렸습니다.

엘살바도르가 3-2로 승리하며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양국 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 축구 경기들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닌, 두 나라 간의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문제를 표출하는 장으로 변모했습니다.

 

두 나라의 예선전이 벌어지는 동안, 각 국가의 팬들은 과격한 언행과 폭력을 행사하며 서로를 자극했고

여러 유혈사태를 치르며 진행된 예선전의 결과가 결국 엘살바도르의 승리로 끝나면서,

이에 흥분한 온두라스 팬들은 엘살바도르의 팬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축구전쟁 발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100시간 전쟁

 

결국 1969년 7월 14일, 이 사태를 구실로 엘살바도르 민간 여객기에 폭탄을 장착하여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의 공군기지를 기습 선제공습하며 결국 전쟁이 개시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단 100시간 만에 국제사회의 중재로 휴전이 선언되었고,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투행위는 7월 29일까지 계속되었고 철군은 8월 3일에야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이 짧은 전쟁으로 인해 수천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양국의 경제적 손실도 막대했습니다.


축구전쟁 그 이후

 

이 사건은 스포츠가 정치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또한, 이 전쟁은 이후 두 나라의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중미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축구전쟁이 있은 후, FIFA와 UEFA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관계인 나라 간의 경기를 불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나라의 전쟁은 오로지 축구경기 결과가 원인이 되어 벌어진 전쟁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 여러 복합적인 갈등으로 인해 이미 깊어진 골이 축구가 도화선이 되어 터졌을 뿐이죠.

 

하지만 축구가 그들에게 있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지를 상징하는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남미 축구팬들에게 있어 축구는 가난하고 힘든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삶의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과격한 서포터들이 일으키는 문제는 현시대에도 항상 어디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축구에 진심이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되겠죠.

항상 건전하고 성숙한 팬 문화를 지키며 발전해가는 축구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축구계의 거장 빌 샹클리의 명언을 끝으로 포스팅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가 생사의 문제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축구는 삶과 죽음, 그 이상의 훨씬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 빌 샹클리 -